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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3 모델은 누구인가?

레오나르도의 《아름다운 페로니에르》를 언급한 가장 오래된 사료는 퐁텐블로 성의 프랑스 왕가 소유의 미술품에 대해 기록한 1642년의 저서입니다. 여기에서 이 그림은 레오나르도가 그린 ‘만토바 공작부인의 초상’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후의 문헌에서는 ‘여인의 초상’이라 기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18세기 말에 처음으로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애첩 루크레치아 크리벨리(1464–1534년)를 모델로 삼았다는 견해가 등장했습니다.

그녀는 루도비코의 아내 베아트리체 데스테(no. 52)의 시녀였으며, 루도비코의 눈에 들어 그의 애첩이 된 여성입니다. 레오나르도가 루도비코를 위해 ‘루크레치아’라는 이름의 여성 초상화를 그렸다는 사실은 동시대 이탈리아 시인 안토니오 테발데오(1463–1537년)의 시에 나오며, 이것이 루크레치아 크리벨리를 모델로 간주하는 근거중 하나입니다.

시인 테발데오는 초상에 묘사된 루크레치아의 영혼은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만의 것이라고 읊었습니다. 만약 《아름다운 페로니에르》의 모델이 루크레치아 크리벨리라면, 우리를 바라보는 듯하면서도 그렇지 않은 듯한 그녀의 시선은 오직 루도비코 한 사람을 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전경에 배치된 돌 난간도 루도비코 이외의 감상자에게 그녀에게는 다가가기 어렵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였을 지도 모릅니다.

루도비코의 전임 밀라노 공작부인이었던 이사벨라 다라고나(No. 54), 또는 베아트리체 데스테(no. 52) 등 다른 여성들도 모델 후보로 거론되었지만, 모두 결정적인 증거가 없으며, 현재 많은 연구자들은 루크레치아 크리벨리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