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4 공명하는 이미지
하기오, 야마기시, 야마토는 저마다 전혀 다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작가들입니다. 그러나 그 작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신비로운 공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작품들 속에서도 역사,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 서구 문화에 대한 동경, 젠더관 등 세 사람에게 공통되는 큰 주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는 보다 구체적인 모티프를 단서로 세 작가의 작품을 넘나들며 소개합니다.
1 소녀만화와 패션
패션은 예로부터 소녀 잡지에서 관심이 높은 주제였으며, 1960년대에는 다카하시 마코토로 대표되는 화려한 패션화가 지면을 가득 채웠다. 앞 섹션에서도 소개한 야마토의 ‘몽 셰리 CoCo’(1971년)는 패션을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디자이너라는 전문 직업의 관점에서 다룬 선구적인 작품입니다. 또한 ‘마멀레이드짱’(1972년)은 달콤 쌉싸름한 사랑 이야기이면서도, 하기오의 서양 복식사에 대한 탐구심이 발휘된 작품이어서 흥미롭다.
하기오 모토
마멀레이드짱
『주간 소녀 코믹』(쇼가쿠칸) 1972년 6월 4일호(23호)
마멀레이드를 잘 만드는 조는 어느 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제프와 부딪혀 재료인 오렌지를 쏟아 버린다. 이를 계기로 손수 만든 마멀레이드를 제프에게 가져다주고,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제프는 보이시한 조를 남자아이로 착각한다. 조의 사랑의 향방은? 초기의 로맨스 코미디 단편.
야마토 와키
몽셰리 CoCo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71년 4월 20일호(17호)-12월 7일호(50호)
멋 부리는 것을 좋아하고 패션 감각이 넘치는 소녀 코코 샤르망이 파리 패션계를 시작으로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디자이너로 힘차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극적으로 그렸다. 연재 당시 유행의 최첨단을 풍성하게 그려낸 화려한 화풍과 멋진 사랑, 꿈으로 가득한 전개로 인기를 끌었으며, 1972년에는 TV 애니메이션으로도 제작되었다.
2 헤이안 시대의 이야기
일본의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을 여러 편 창작했다는 점은 야마기시와 야마토의 공통점이기도 하나, 여기에서는 헤이안 시대에 성립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소개한다. 야마토의 ‘다케토리 이야기’는 같은 제목의 학술서(학습연구사, 1988년)를 위해 그린 것이다. 야마기시의 ‘오치쿠보 이야기’는 10세기 말에 성립한 것으로 알려진 중세 일본의 신데렐라 이야기로, 풀컬러 잡지 『리리카』(산리오)에 게재되었다. 기모노에 대한 조예가 깊은 두 사람의 섬세한 헤이안 시대 복식 묘사에도 주목해 주기 바란다.
야마기시 료코
오치쿠보 이야기
『리리카』(산리오) 1976년 1호(창간호)-2호
원작 『오치쿠보 이야기』는 10세기 말에 성립했다는 작자 미상의 서사 문학이며, 초라한 집에 살며 계모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오치쿠보의 아가씨가 우콘노쇼쇼의 눈에 들어 사랑받는 신데렐라 스토리.
야마토 와키
다케토리 이야기
『GAKKEN MOOK 다케토리 이야기』(가쿠슈켄큐샤) 1988년
가쿠슈켄큐샤에서 출판한 『다케토리 이야기』 해설 무크지를 위해 새로 그린 삽화. 다나베 세이코의 현대어 번역본에 삽입되었다. ‘아사키유메미시’와 같은 시기에 발표된 것이며, 헤이안 시대의 복식 디자인이 빼어나다.
3 어머니와 딸의 갈등
하기오와 야마기시의 작품에는 공통적으로 어머니와 딸의 관계성을 그린 작품들이 눈에 띈다. 하기오의 ‘이구아나 소녀’(1992년)과 야마기시의 ‘귀자모신(鬼子母神)’(1993년)에는 방향성은 다르지만, 모두 딸을 사랑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딸이 등장한다. 두 작품에서 인상적인 점은 어머니가 아니라 딸 쪽이 변화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사랑받지 못한 아픔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한 걸음 내딛으려는 딸들의 모습에서 하기오와 야마기시가 계속 그린 여성의 강인함을 볼 수 있다.
하기오 모토
이구아나 소녀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92년 5월호
자신은 못생긴 이구아나라서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아오시마 리카. 리카의 어머니 역시 리카만 이구아나로 보았다. 어머니는 여동생을 귀여워하면서 리카를 부끄럽게 여겼다.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란 리카는 결혼한 뒤 가족과 떨어져 살아간다. 어머니와 딸의 애증, 자기 긍정에 대한 갈등을 그린 걸작 단편 만화.
야마기시 료코
귀자모신(鬼子母神)
『월간 빅 골드』(쇼가쿠칸) 1993년 7월호
이란성 쌍둥이인 미즈키는 오빠와 성격도 얼굴도 닮지 않았으며, 남자인 오빠는 왕자이고 여자인 자신은 악마라고 믿는다. 아버지의 얼굴은 그저 문패이며, 보살같은 어머니에게는 미즈키가 실패할 때마다 뒤통수에 또 다른 얼굴이 보인다. 왕자인 오빠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지만, 어느 날…….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연기하는 가족의 어둠과 붕괴를 그린 이야기.
4 성의 경계
1970년대는 여성 해방 운동의 대두와 이전 시대의 봉건적인 사회제도에 대한 반발 등이 맞물려 다양한 섹슈얼리티와 성 역할로부터의 해방을 주창한 영화와 소설이 발표되는 등 사람들의 젠더 의식이 급속히 고조된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년 개봉)에서 비요른 안데르센이 연기한 금발의 가냘픈 소년 타치오의 양성적인 아름다움은 일본에서도 큰 붐을 일으켰으며, 소녀만화의 미소년상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기발한 의상과 메이크업, 과격한 연출로 젊은이들을 매료시킨 데이비드 보위로 대표되는 글램 록 문화도 이러한 붐을 뒷받침했으며, 중성적인 매력을 지닌 스타들이 인기를 모았다. 그들이 확립한 첨단적인 패션 스타일은 동시대 소녀만화의 캐릭터 조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여기에서는 세 작가의 작품 가운데, 성별을 초월한 존재로 그려진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을 각각 소개한다.
하기오 모토
11명이 있다!
『별책 소녀 코믹』(쇼가쿠칸) 1975년 9월호-11월호
우주대학의 최종 시험은 표류하는 우주선에서 열 명의 수험생이 힘을 합쳐 53일간 살아남는 것이다. 그러나 수험생들이 우주선에 모이자 거기에는 한 사람 더 많은 열한 명이 모여 있었다. 열한 번째 사람은 누구이며, 그 목적은? 저마다의 사정을 안고 있는 수험생들이 도전하는 파란만장한 최종 시험의 막이 오른다. 하기오 SF의 수작.
야마기시 료코
키메이라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84년 5월호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S시 외곽에 신설된 대학교에 진학한 이소무라는 여자 기숙사에서 체육학과 단거리 선수 스즈키 가케루와 같은 방을 쓰게 된다. 미소년 같은 중성적인 외모에 말수가 적고 차가운 한편, 동식물을 무척 사랑하는 신비로운 가케루에게 설레는 이소무라였지만, 시내에서는 살인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기 시작하는데…….
야마토 와키
장미 자작
『월간 mimi』(고단샤) 1976년 4월호, 11월호와 1977년 5월호, 12월호
어떤 사정으로 고향에서 도망쳐 나온 귀족의 딸 페데는 우연한 인도로 천사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지닌 기디언 자작을 만난다. 장미로 뒤덮인 저택에서 늙은 하인과 함께 숨어 지내듯 살아가는 그와 조금씩 마음을 나누게 된 페데였지만……? 성별을 초월한 베일에 싸인 청년 기디언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탐미와 환상의 연작 단편.
5 고양이
소녀만화가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반쯤 업계의 정설인데, 하기오, 야마기시, 야마토도 고양이 애호가로 알려진 작가들이다. 여기에서는 세 사람의 각기 다른 고양이 만화를 소개한다. 하기오의 ‘레오 군’(2008~09년)은 고양이가 인간의 사회 활동을 흉내 내면서 벌어지는 부조리를 코믹하게 그린 작품이다. 인간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상식이나 전제에 대해 고양이의 시점에서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다. 한편 야마기시는 에세이 만화에서 반려묘와의 실제 체험담을 자주 선보인다. 또한 야마토의 작품에도 고양이가 등장하는 작품이 있는데, 실제로 고양이와 산 경험이 있는 작가 특유의 관찰력에 뒷받침된 고양이의 신체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하기오 모토
레오 군
『월간 flowers』(쇼가쿠칸) 2008년 2월호-2012년 6월호
귀여운 호랑이무늬 고양이인 레오 군은 호기심이 왕성하고 즐거운 일과 맛있는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이웃에 사는 다쓰루 군과 학교에 다니거나 맞선을 보거나 만화 어시스턴트로 일하기도 하지만 실수투성이다. 자유분방한 행동과 엉뚱한 짓으로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면서도 인간 사회에서 열심히 사는 레오 군의 분투를 유쾌하게 그린 코미디 작품.
야마기시 료코
고양이, 猫, Cat
『Mei(冥)』(가도카와서점) Vol. 1(창간호)
작가가 사랑하는 반려묘를 떠나보낸 상실감 속에서도 재해 지역의 보호묘를 맞이한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만화.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하는 책임감과 동물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 지원자들의 진지한 노력 등도 자연스럽게 그려져 있다. 여기에 조금 신비로운 체험까지 더해진다. 고양이 애호가라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한 편.
고반의 나날
『언령』 BE LOVE KCDX(고단샤) 2013년
작가의 반려묘 고반의 일상을 담은 짧은 에세이.
야마토 와키
피터 브라운의 신기한 모험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73년 4월 24일호(17호)
곧 여섯 살이 되는 피터는 고양이를 기르고 싶어 했다. 어느 날 길고양이를 쫓아가던 중 자신이 흰 고양이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다. 선배 고양이 미아에게 길고양이의 처세술을 배우는 피터였지만……. 동물을 바라보는 야마토의 다정한 시선이 느껴지는 초기 단편.
뉴욕 고마치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85년 8월 5일호(16호)-1988년 8월 20일호(17호)
문명개화 직후의 도쿄. 잡화 도매상의 후계자로서 남자아이처럼 자란 시노는 남동생이 태어나자 갑자기 ‘여성’으로 돌아가게 되고, 목표를 잃어버린다. 그러던 중 ‘고용 외국인’으로 미국에서 일본에 온 어빙을 만나 새로운 땅 뉴욕을 향해 길을 떠난다. 시대의 전환기에 사랑과 일에 거침없이 뛰어드는 고마치 아가씨의 모험 로맨틱 코미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