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해설: 야마기시 료코
Theme 1: 초기 전위 작품에서 ‘아라베스크’로
데뷔 당시의 야마기시는 둥그스름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그렸지만, ‘비와 코스모스’(1971년) 무렵부터 신체 비율이 좋고 사실적인 화풍으로 전환한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 소녀만화의 미의식에서 벗어난 것이었으며, 독자와 편집부도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의 ‘하얀 방의 두 사람’(1971년)에서는 여자간의 친밀한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는 등 주제 면에서도 전위적인 시도가 엿보인다. 같은 해 『리본』 10월호부터 첫 장기 연재작인 ‘아라베스크’의 집필을 시작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에 걸쳐 발레는 소녀 잡지에서 매우 인기 있는 모티프였으며 이미 진부한 이미지로 간주되었지만, 야마기시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혹독한 신체 훈련을 그린 본격적인 발레 만화에 도전한다. 프리마돈나를 지향하는 논나의 갈등과 성장은 순식간에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이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둔다. 야마기시는 발레를 ‘장식’같은 존재가 아니라, 정면에서 ‘예술’로 그려냈다.
하얀 방의 두 사람
『리본 코믹』(슈에이샤) 1971년 2월호
부모를 여읜 소녀 레시느가 기숙사에서 만난 시몬은 불량한 태도 뒤에 고독한 감정을 숨기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시몬에게 점점 끌리는 자신을 깨닫는 레시느였지만, 세상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관계성 때문에 갈등한다. 여성 간의 동성애를 주제로 그린 작품.
게싱 게임
『별책 세븐틴』(슈에이샤) 1972년 11월호
결혼을 앞둔 로슈 가문의 젊은 당주 루퍼트 앞에, 과거에 아버지가 애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복동생 미셸이 나타난다. 루퍼트는 음란하게까지 느껴지는 미셸의 모습과 도발적인 태도에 짜증을 느끼는데……. 고독하고 섬세하면서도 순수함을 지닌 요염한 청년 미셸 뒤투아를 주인공으로 한 일명 ‘미셸 뒤투아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
빨간 머리 소년—원안: 쥘 르나르 『홍당무』
『별책 세븐틴』(슈에이샤) 1973년 5월호
빨간 머리와 주근깨 때문에 ‘홍당무’라고 멸시당하며 끊임없이 학대받은 스테파누. 그러던 어느 날, 도시에서 삼촌 에마뉘엘이 찾아오는데……. 쥘 르나르의 자전적 소설 『홍당무』를 야마기시 특유의 해석으로 만화화한 이 작품은 역기능적 가족의 어두운 면과 구원을 그린다.
아라베스크
『리본』(슈에이샤) 1971년 10월호-1973년 4월호
『꽃과 꿈』(하쿠센샤) 1974년 6월호(창간호)-1975년 11월 5일호(22호)
소련 치하의 키예프 발레학교에 다니는 논나는 큰 키 때문에 고민하며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있었는데, 유리 미로노프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계기로 타고난 재능을 꽃피운다. 치열한 경쟁과 예술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흔들리면서도 프리마돈나를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논나의 성장을 그린 정통 발레 만화.
Theme 2: 신화와 전래 동화의 세계
1970년대를 중심으로 야마기시는 그리스 신화와 서양에 전해 내려오는 전래 동화, 전승을 제목에 붙인 단편을 다수 발표했다. ‘팅커벨’(1973년)이나 ‘라푼젤 라푼젤’(1974년)이 소녀만화다운 소녀의 성장 서사로 그려지는 한편, ‘하피’(1978년)와 ‘스핑크스’, ‘메두사’(모두 1979년)에서는 정신의 뒤틀림이나 광기가 전설 속 괴물의 이미지에 맡겨진다. 이러한 작품군에서 신화와 전승이라는 모티프는 단순한 이야기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가시화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또한 연재작 ‘요정왕’은 야마기시의 고향인 홋카이도를 무대로 그린 판타지 활극이다. 요정 나라 왕의 환생으로 각성한 소년 잭이 나라의 위기를 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모습을 그린 하이 판타지이며, 장르를 불문하고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요정왕
『꽃과 꿈』(하쿠센샤) 1977년 5월 5일호(9호)-1978년 11월 5일호(21호)
병의 요양을 위해 홋카이도로 이사 온 잭은 쿠 훌린과 만나고, 요정왕의 환생으로서 각성한다. 사악한 마녀 퀸 마브의 지배를 받게 될 처지에 놓인 요정의 나라 님피디아를 구하기 위해 잭은 동료들과 함께 모험의 길을 떠난다. 이색적인 판타지 활극.
크리스마스
『월간 프린세스』(아키타 쇼텐) 1976년 1월호
부모가 이혼한 뒤 친척 집을 전전한 조르주는 일곱 살의 눈 내리는 날에 아이오와주의 포크 가족의 집에 도착한다. 조르주를 따뜻하게 대해 주는 사람은 마흔이 넘은 미스 숙뿐이다. 그러나 그녀 역시 포크 가족에게 줄곧 학대받고 있었는데…….
시링크스 판
『월간 프린세스』(아키타 쇼텐) 1976년 5월호
두 번째 작품을 창작하는 데 고뇌하던 신인 소설가 오시안은 담당 편집자로부터 도망치듯 삼촌의 저택을 물려받는다. 유서에는 ‘반드시 그곳에 살면서 판을 한 마리 기를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판’이란 수염이 난 인간의 얼굴에 염소의 귀와 다리를 가진 목신이다. 인적이 드문 저택에서 기르던 ‘판’이란……?
팅커벨
『디럭스 마가렛』(슈에이샤) 1973년 가을호
아름다운 어머니와 자매들 사이에서 미운 오리 새끼라고 멸시받으며 자란 다프니는 네 살 때 요정 팅커벨을 만난다. 팅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팅크만을 친구 삼아 성장한 다프니에게 같은 반 친구의 오빠 기가 다가온다. 하지만 기에게 마음을 연 다프니는 팅크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된다. 서투른 소녀의 성장 이야기.
라푼첼 라푼첼
『별책 소녀 프렌드』(고단샤) 1974년 6월호
식물학자 옥타브 피에는 조사차 탑이 있는 저택, 멜로박 저택에 머물게 된다. 어느 날 신비로운 목소리가 들려오고, 탑 위에 있는 긴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를 만나 첫눈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멜로박 부인은 즉시 옥타브를 쫓아내려 한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바탕으로 모녀 관계를 그린 독창적인 이야기.
메타모르포시스전
『꽃과 꿈』(하쿠센샤) 1976년 5월 20일호(10호)-10월 20일호(20호)
‘전국의 고등학교 수험생들이여! 변신하라!!’――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부모의 권유로 명문 입시학원에 가까스로 합격한 오니시 구미는 공부에만 매달리는 학창 생활에 지쳐 있었다. 그 때 나타난 전학생 소가 가나메. 자기 방식대로 살며 솔직한 가나메의 언행에 경직되어 있던 수험생들은 휘둘리는데…… 야마기시의 작품 중에서는 이색적인 정통 학교 청춘 스토리.
파뉘키스
『꽃과 꿈』(하쿠센샤) 1976년 12월 20일호(24호)-1977년 1월 5일호(1호)
프랑스 혁명 시대의 시인 앙드레 셰니에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단편. 영리하고 아름다운 남매 해리와 넬리는 학교에 가지 않고 책에 파묻혀 공상의 세계를 누비며 지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오빠 해리는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황금빛 마음을 간직한 넬리는 해리와의 사이에 거리감을 느끼게 되는데…….
하피
『쁘띠 코믹』(쇼가쿠칸) 1978년 12월호 증간
명문 진학고에 때아닌 전학생이 등장하면서 완전히 컨디션이 엉망이 된 주인공. 성적이 떨어지는 가운데, 전학생에게서 묘한 ‘향기’를 느끼게 되는데……. 제목인 ‘하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반인반조의 여자 정령을 가리킨다. ‘약탈자’라는 의미도 있다.
스핑크스
『꽃과 꿈』(하쿠센샤) 1979년 10월 20일호(20호)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마녀의 저택에 갇힌 ‘나’를 날마다 찾아오는 스핑크스. 늘 하던 수수께끼에 답하지 못하면 잡아먹히고 만다. 도망칠 수 없는 지옥 같은 나날 속에서 마녀의 저택에 변화가 찾아온다. 누군가 나를 어스킨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스핑크스에게 들키면 잡아먹히고 마는데……. 과연 나는 구원받을 수 있을까?
파이드 파이퍼
『you-all』(슈에이샤) 1991년 Vol. 3
남편의 전근으로 살게 된 곳은 어린 시절에 살았던 M시였다. 23년 전의 끔찍한 기억을 되살리기라도 하듯, 인근 S시에서 아이가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파이드 파이퍼(얼룩무늬 옷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에 등장하는 남자. 가까이에 있을 텐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유괴범의 공포를 그린다.
블루 로지스
『you-all』(슈에이샤) 1991년 Vol. 7
일러스트레이터 가와다 다미코는 어릴 때부터 우수한 여동생과 비교당하며 자라 자존감이 낮다. 서른 살을 앞두고 두 살 어린 편집자 나카지마 가즈히사와 사랑에 빠져 사랑받는 기쁨을 알게 된다. 자기에게 자신감이 생기면서 세상이 이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러나 나카지마와의 관계는 파국을 맞고, 상처받은 다미코는 추억을 되짚으며 자신을 돌아본다. 여성의 마음의 자립을 산뜻하게 그린 단편.
메데이아
『amie』(고단샤) 1997년 3월호
대학생 아리무라 히토미는 부모 사이가 좋지 않아, 아버지는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히토미에게 의존하며 살고 있다. 히토미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면서도 어머니의 집착에서 벗어나려고 어머니 몰래 유학을 준비하며 자립의 길을 걷기 시작하지만,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메데이아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아 모성의 광기와 비극을 그린 단편.
메두사
『별책 기상천외』(기상천외사) 1979년 제9호
메두사는 뱀의 머리카락을 지녔으며, 그 모습을 본 사람을 돌로 바꾸어 버리는 괴물이다. 오늘도 여러 사람을 돌로 바꾸었다. 그러나 집에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도 돌로 변하지 않는 니콜라가 있다. 니콜라와 함께 있을 때만큼은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데……. 신화 속 괴물에 빗대어 인간의 마음의 내면을 그려낸 뛰어난 단편.
다프네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81년 겨울호
심리적 원인에 의한 문제를 안고 있는 소니아는 휴양을 위해 담쟁이덩굴이 얽힌 마담 페쿠르의 호텔을 찾아온다. 그곳에는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는 단골 투숙객들이 머물고 있다. 어느 날 밤, 소니아의 방에 갑자기 수상한 사람이 들어온다. 그러나 아무도 그런 수상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이 호텔은 무언가 이상했다. 미스터리풍으로 인간 내면의 어둠을 파고드는 단편.
검은 헬레네
『꽃과 꿈』(하쿠센샤) 1979년 6월 5일호(11호)
그리스 신화 속 ‘파리스의 심판’에서 비롯된 트로이 전쟁. 그 중심에 있는 절세의 미녀 헬레네를 둘러싼 서사를 그린 만화. 아름다워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헬레네와, 추해서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대비시키며 신화를 작가 특유의 심리 드라마로 재해석한 작품.
나락 타르타로스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8년 2월호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아름답고 총명한 언니 델피느. 갈색 머리에 회색 눈을 지닌 여동생 에블리느. 그 밖의 외모는 판박이인 자매지만 운명은 크게 달랐고, 사람들의 관심은 늘 델피느에게 쏠렸다. 언니에 대한 질투와 선망이 불러일으키는 비극을 그린 심리 드라마 단편.
행복의 왕자
『월간 프린세스』(아키타 쇼텐) 1975년 1월호
런던에서 황폐한 생활을 하던 마틴은 열여섯 살에 부유한 남자에게 시집간 소꿉친구 콘스탄스가 파산을 비관해 자살했다는 사실을 신문을 통해 알게 된다. 그녀를 추모하려고 저택을 찾아가자, 그곳에는 콘스탄스와 꼭 닮은 소년이 있었다. 그 아이를 돌보는 사이 마틴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까지도 점차 다정해진다. 동화 『행복한 왕자』를 연상시키는 애틋한 오리지널 스토리.
Theme 3: ‘해 뜨는 곳의 천자’에서 개척한 새로운 경지
‘해 뜨는 곳의 천자’는 1976년에 『꽃과 꿈』(하쿠센샤)의 자매지로 창간된 『LaLa』에 1980년 4월호부터 약 4년간 연재된 야마기시의 대표작이다. 아스카 시대를 무대로 우마야도 왕자(훗날의 쇼토쿠 태자)가 음모가 소용돌이치는 조정의 패권 다툼 속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정치극이며, 야마기시가 그려낸 요염한 미소년(미청년)의 태자상은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품고 있던 ‘만 엔짜리 지폐의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특별한 능력을 지녔기에 느끼는 고독, 그리고 신하인 소가노 에미시(에미시)를 향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애태우는 우마야도 왕자의 고뇌──그 짙고 극적인 인간 드라마는 당시의 소녀들을 열광시키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해 뜨는 곳의 천자
『LaLa』(하쿠센샤) 1980년 4월호-1984년 6월호
아스카 시대에 중앙집권 국가건설에 기여하고 불교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지혜로운 인물로 알려진 우마야도 왕자(훗날의 쇼토쿠 태자)의 반생을 그린 역사 드라마. 아름다운 외모와 초인적인 능력으로 다른 이들을 압도하는 우마야도의 정치적 수완과 측근인 소가노 에미시 간의 애증 어린 관계성의 향방에 당시 독자들은 열광했다.
우마야코 여왕
『LaLa』(하쿠센샤) 1984년 11월호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5년 8월호(창간호)-9월호
『해 뜨는 곳의 천자』의 스핀오프 작품. 위대한 아버지 쇼토쿠 태자가 죽은 뒤, 남겨진 왕자와 왕녀들 앞에 숨겨둔 딸 우마야코 여왕의 존재가 드러난다. 아버지를 닮은 요염한 미모를 지닌 우마야코 여왕을 둘러싸고, 마침내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했던 조정의 역학 관계(세력 구도)가 무너지는데…….
Theme 4: 이계로 통하는 문──현실의 임계점
야마기시의 단편 작품에는 일본의 옛이야기나 민간전승에서 영감을 얻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혹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그린 것이 많이 보인다. 그곳에서 일상은 결코 닫힌 세계가 아니라, ‘이계’와 이어지는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성립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비의 방문자’(1979년)처럼 시공을 초월한 만남을 잔잔하게 그린 작품이 있는 한편, ‘밀물의 목소리’(1983년)와 ‘하쿠간시’(2000년)에서는 ‘보이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의 비극과 고뇌가 그려진다. 또한 ‘요모쓰히라사카’(1983년)와 ‘내 인형은 착한 인형’(1986년)에서는 이승에 계속 머무르려는 강한 집념이 경계를 넘어 나타난다.
이러한 작품들을 관통하는 것은 인간의 업과 욕망, 그리고 정신과 육체의 연속성에 대한 시선이다. 이계란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잠재하는 것──야마기시는 그 임계점을 날카롭게 가시화했다.
히이나의 매장
『꽃과 꿈』(하쿠센샤) 1976년 3월 20일호(6호)
야요이가 열여섯 살을 맞이한 봄, 증조부가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는 오래된 명문가의 히나마쓰리 행사에 초대받는다. 현재 그 집안을 이어 가는 사람은 현 당주인 노파와 야요이와 동갑인 미소녀 시즈네, 단 두 사람뿐이다. 그러나 한밤중에 잠에서 깬 야요이가 저택 안을 거닐다가, 자신을 ‘시즈오’라고 소개하는 미남을 만나는데……. 탐미와 인습이 소용돌이치는 미스터리 호러.
여름의 우화
『월간 세븐틴』(슈에이샤) 1976년 8월호
여름방학을 만끽하려던 스미오는 H시의 지인 집에서 2주 동안 집을 봐 주게 된다. H시의 숨 막힐 듯 무더운 날씨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소녀가 있었다. 스미오는 소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왜 여름 거리를 헤매고 다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만화적 표현의 ‘여름 섬광’이 독자의 마음을 꿰뚫는다.
비의 방문자
『월간 세븐틴』(슈에이샤) 1979년 7월호
마흔 살의 독신 이토이 구니코는 시청에서 일하면서 독신 생활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는 여성을 세상은 냉담하게 바라본다. 어느 비 오는 날 집에 돌아오자, 벨이라고 이름을 밝힌 소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구니코와 줄곧 함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벨 때문에 당황하는 가운데, 구니코의 운명은 바뀌기 시작한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이야기.
요모쓰히라사카
『보니타』(아키타 쇼텐) 1983년 10월호
일본 신화에 기록된 이승과 저승 사이에 놓인 비탈길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은 단편 작품. 이야기는 한 여자가 깊은 어둠 속에서 눈을 뜨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몸을 움직일 수 없고 기억마저 희미해진 자신을 보고 극심한 혼란에 빠지지만, 어느 순간 들리지 않던 소리가 들리고 낯선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 여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밀물의 목소리
『쁘띠 코믹』(쇼가쿠칸) 1982년 11월호-12월호
열일곱 살 사와는 텔레비전에도 출연하는 영적인 능력을 지닌 소녀. 잡지의 오컬트 기획으로 영능력자들과 사람이 살지 않는 저택에 묵는다. 대량의 포장지와 걸어 다니는 아이, 밀물 소리 등 기이한 현상을 계속 목격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조작된 연출’이라 비웃으며 믿어 주지 않는다. 공포와 고립감에 내몰리는 사와와 그녀를 믿지 않은 채 압박하는 어른들―허구와 현실의 괴리가 마음을 갉아먹는 괴이담.
쓰쿠요미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6년 8월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 쓰쿠요미노 미코토, 다케하야스사노오노 미코토라는 일본 신화의 삼귀자(三貴子)를 모티프로 삼은 일본 신화물. 누나 아마테라스에게 사모의 정을 품고 충실한 종으로서 섬기는 쓰쿠요미. 같은 남동생인데도 자신은 미움을 받고 스사노오가 총애받아 번민하는 나날을 보내던 그는 어느 날 아마테라스로부터 우케모치노카미에게 심부름을 가라는 부탁을 받는데…….
새장 속의 새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81년 9월호
‘토리’라 불리는 일족으로 태어났지만, 도루는 날지 못 한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나는’ 것으로 생계를 꾸려 온 할머니는 임종을 앞두고 “지금이라면 너도 날 수 있을지 몰라”라고 말한다. 끈끈한 관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소년이 바깥 세상에서 손에 넣은 것은……?
요괴의 저택
『쁘띠 코믹』(쇼가쿠칸) 1981년 6월호
아오이는 도쿄의 고등학교에 다니기 위해 이모 유코의 집에서 살게 된다. 서양식 저택이라고 들었던 집은 소박하면서도 기묘한 분위기를 풍겼고, 가전제품이 고장 나거나, 아무도 없을 텐데 문이 열리고 닫히는 등 불가사의한 현상이 끊이지 않는 하자투성이 주택이었다. 그러나 유코는 개의치 않고 어딘가 태평하게 군다. 일상에 도사리는 기묘함과 익살스러움을 그린 괴기 코미디.
귀래영(鬼来迎)
『DUO』(아사히 소노라마) 1981년 11월호
도시 생활에 지친 도시코는 바닷가의 집에 들어가 살며 일하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괴성을 지르고 왼쪽 손목이 없는 야윈 소년이 살고 있었다. 가정부에게서 정원의 돌을 옮기면 도깨비가 온다는 전설을 들은 도시코는 이윽고 땅이 흔들리면서 벌어지는 이변과 마주하고, 무서운 광경을 목격한다. 괴이한 현상과 맞닥뜨린 인간의 공포를 그린 이야기.
야오비쿠니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82년 9월호
도쿄로 상경한 여고생 에자키는 고독과 권태에 잠긴 나날 속에서 아름다운 소녀 야에코를 만난다. 초대받은 바닷가 집에는 젊고 아름다운 어머니와 이모가 살고 있었고, 에자키는 환대받지만, 이윽고 에자키의 몸에 이상이 생긴다. 인어의 고기와 불로불사의 전설인 ‘야오비쿠니’를 배경으로 소녀의 매혹과 불길함, 이질감과 공포가 서서히 스며드는 괴이담.
천인석
『부~케』(슈에이샤) 1984년 9월호
『고사기』에 등장하는 천인석은 천 명의 힘으로 끌 수 있는 바위로, 저승과 이승을 가르는 경계로 여겨진다. 도쿄에서 전학 온 가나코는 뒷마당에 있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체육관에 이질감을 느낀다. 전쟁 전에 지어진 그 건물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보였고, 홀린듯 발을 들여놓은 가나코는 이윽고 이계의 기운과 접하게 된다. 경계를 둘러싼 괴이한 현상을 그린 단편.
아메노토리후네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85년 1월호
고등학교 입시에 두 번이나 낙방한 가즈야는 수면제를 먹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마음을 바꾸고 집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약기운에 몽롱해져 절벽에서 떨어지고 만다. 큰 부상을 입은 가즈야는 여관에 사는 노인과 말을 하지 못 하는 미소녀에게 구조된다. 이 여관은 어딘가 기묘하고, 늘 많은 손님이 찾아오는데……. 일본 신화를 제목에 붙인 생명을 둘러싼 이야기.
바다의 물고기 비늘 궁전
『쁘띠 플라워』(쇼가쿠칸) 1985년 4월호
아버지의 13주기 기일을 맞아 딸 가즈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온 도시코는 바다를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 가족을 싫어했던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 상태였지만, 소녀의 환영과 가즈미의 행동을 지켜보는 사이 꿈속에 나타났던 모자를 쓴 소녀의 존재를 떠올린다. 기억을 더듬어 가던 도시코는 바다에 이끌려 돌아온 자신의 과거와 감춰져 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계절을 초월한 향기로운 열매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5년 10월호
여덟 살을 맞이한 휴가와 히카게는 일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특별한 열매를 먹는다. 이는 둘 중 ‘선택받은 자’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게 되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체험을 거듭하면서 역할과 삶의 방식이 크게 달라진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 사이에 도사리는 신비와 인간의 업의 깊이를 그린 이야기.
내 인형은 착한 인형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6년 2월호-4월호
전후 도쿄. 다케우치 집안에 전해진 이치마쓰 인형은 어머니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물림된다. 이웃 노모토 가문의 딸 하쓰코가 죽었을 때 태워 없앴을 터인 인형은 어째서인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세월이 지나 하쓰코의 조카와 그 조카의 딸 요코가 기이한 현상에 시달리면서 인형에 깃든 원한이 드러난다. “내 인형은 착한 인형……” 동요의 선율과 함께, 가련하고 예쁜 인형을 둘러싼 오싹한 이야기.
비여인
『네무키』(아사히 소노라마) 1994년 Vol. 17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창작한 만화. 교묘한 말솜씨로 여성들을 사로잡아 온 미타 가즈요시. 이야기는 그의 아내의 시점에서 전개된다. 자신은 비를 부르는 여자라 남자 운이 없고, 가즈요시는 맑은 날을 부르는 남자라 금전운이 없다. 그렇기에 이상적인 커플이 될 것이라며 결혼생활에 기대를 걸었던 아내. 그러나 남편 주변에 끊임없이 드리우는 여자들의 그림자에 슬퍼하면서도 남편 곁을 떠나지 못한다. 죄와 벌, 남녀의 인과를 그린 단편.
기도락(着道楽)
『별책 프린세스』(아키타 쇼텐) 1993년 8월 25일호
비가 그친 뒤 마을의 좁은 길을 혼자 걷는 기모노 차림의 여인. 낯익은 길을 걸으며 그녀는 과거에 자신을 꾸며 주었던 여러 기모노를 떠올리고, 옷의 무늬와 스타일링에 담았던 자신의 을 되새긴다. 기모노를 사랑하는 ‘기도라쿠’ 여인의 시점을 통해 기모노 코디네이션의 섬세한 묘미를 전하는 작품……인 줄 알았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가 펼쳐진다.
원귀
『월간 코믹 톰』(우시오 출판사) 1995년 10월호-1996년 1월호
덴포 대기근 당시의 참혹한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시대는 현대로 바뀌고, 미술대학 동아리 ‘후시기엔’의 일곱 명은 이와테현의 고린지 절에서 합숙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어쩐지 지역 주민들이 꺼리는 절이었다. 이윽고 그들도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불길한 현상에 사로잡히는데…….
하쿠간시
『월간 코믹 톰 플러스』(우시오 출판사) 2000년 5월호-9월호
전쟁후 얼마 되지 않은 오타루에서 전쟁고아인 ‘나’는 운명관상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을 지닌 맹인 남자 하쿠간시에게 거두어져 ‘미쓰코’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 채 크는 미쓰코였지만, ‘행복과 불행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은 양이 주어진다’라는 하쿠간시의 말이 가슴에 깊이 남는다. 인간의 운명과 삶의 방식이 조용히 드러나는 이야기.
시계꽃
『빅 코믹』(쇼가쿠칸) 2018년 6월 25일호(12호)
“네, 시간이 됐습니다”라며 꽃을 건네받는 꿈을 꾸고 잠에서 깨어난 A코는 공원 벤치에 누워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려는 A코 앞에 그리운 사람들이 차례로 나타난다. 취미 교실에서 만난 친절한 지인과 학교 선생님. 그들과의 추억을 되돌아보면 다시 같은 공원 벤치로 돌아와 버린다. 시간과 공간의 굴레에 사로잡힌 사람의 이야기.
간(艮)
『모닝』(고단샤) 2014년 1월 9일 2, 3 합병호-2월 6일 6호
간은 십이지에서 소와 호랑이 사이, 즉 북동쪽을 가리키며, 음양도에서는 귀문으로 여겨진다. 이야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탈옥수가 도주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한편 출판사에 근무하는 아키코는 영능력자를 취재하던 중 집의 귀문이 어디인지 지적받고, 불가사의한 부상과 사건에 시달리게 된다. 현실과 영적 세계의 교차를 그린 괴이담.
여우 여자
『빅 코믹 포 레이디』(쇼가쿠칸) 1981년 4월호
아홉 살 소년 마사루는 ‘이나리 저택’이라 불리는 대저택에 맡겨진다. 그곳 사람들의 복잡한 관계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살아남기 위해 영리하게 처신하는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마사루는 저택 안의 사당에 아름다운 여자가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타인을 믿지 않는 주인공 마사루의 독백과 날카로운 눈빛은 같은 시기에 집필된 ‘해 뜨는 곳의 천자’로 이어진다.
조향락(鳥向楽)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6년 11월호
인간의 상반신과 새의 하반신을 지니고 극락정토에서 천상의 음악을 연주한다고 전해지는 신화 속 생물 ‘가료빈가’를 주인공으로 한 환상적인 작품. 중생에게 불법을 설파하는 임무를 잊은 벌을 받은 한 가료빈가의 시점에서 여래와 보살 등 부처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나의 이야기 속 각 절을 음악의 악장처럼 구분하는 독특한 구성을 취했다.
Theme 5: ‘가족’이라는 제도
‘가족’이라는 관계 역시 야마기시가 다양한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그려온 중요한 주제이다. 특히 거기서 드러나는 것은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내재된 불균형과 억압이다.
‘천인당초’(1979년)는 가부장제의 희생자가 된 여성의 비극을 그린 작품이며, 단편임에도 독자들에게 강한 여운과 충격을 남긴 걸작이다. 또한 ‘토코요 나가나키도리’(1985년)와 ‘코노하나사쿠야히메’(1986년)에서는 『고사기』의 일화를 바탕으로 부모가 자식을 똑같이 사랑할 수 없다는 슬픈 구조가 드러난다.
야마기시는 가족을 무조건적인 긍정의 공간이 아니라, 사회제도로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다시 바라본다. 이러한 시선은 일본의 전통적인 가족관이 지닌 왜곡과 부조리를 날카롭게 되묻는다.
드림
『LaLa』(하쿠센샤) 1978년 2월호-3월호
오카모토 유즈는 어머니의 재혼으로 같은 반 친구 스오 쇼코의 사촌이 된다. 겨울방학이 되자 유즈는 스오 가문의 일족이 사는 웅장한 서양식 저택에 초대받고, 그곳에서 우아하고 아름다운 니오우를 만난다. 유즈는 꿈같은 시간을 보내지만, 조금씩 저택 안의 기묘한 인간관계를 알아차린다. 니오우의 우아함 뒤에 숨겨진 비밀은? 인간 무의식의 어둠을 파고드는 단편.
천인당초
『주간 소녀 코믹』(쇼가쿠칸) 1979년 1월 20일호(2호)
교코는 길가에 핀 푸른 꽃에 마음을 빼앗긴다. 친구에게서 들은 그 꽃의 이름을 부모에게 말하자, 어머니는 ‘천인당초’라고 부르는 편이 좋겠다고 타이르고 아버지는 꾸짖는데……. 일상 속에 도사리는 광기와 뒤틀린 가족관계를 그린다. 이 작품은 야마기시의 창작 활동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영원한 세계의 길게 우는 새
『자몽』(신쇼칸) 1985년 21호
일본 문헌에서 닭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고사기』이며, 아마테라스 오미카미가 아마노이와야토에 숨었을 때 신들이 영원한 세계의 길게 우는 새들을 모아 울게 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이야기는 물에 빠져 죽은 언니 하나에를 찾던 중 할머니가 수탉의 사체를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병약하고 아름다운 언니에게 가족의 사랑이 집중되자 여동생 유키에는 소외되어 질투심을 키운다.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과 증오의 어둠을 그린 작품.
신에게 홀려 사라지다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5년 11월호-1986년 1월호
도도 가즈에는 에도에서의 임무를 마치고 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 군 행정관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동생 교야를 신에게 홀려 사라져 잃었으며, 당시의 일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성묘로 찾은 보리사 절에서 가즈에는 동생과 동갑인 세노오 치후유라는 젊은이와 기이한 만남을 갖는다.
고노하나노 사쿠야히메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6년 6월호
제목인 고노하나노 사쿠야히메는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니니기노 미코토의 아내가 되었지만, 추한 언니 이와나가히메는 거부당했다는 고지키와 일본서기에서 유래한다. 언니 사쿠야는 그 이름에 걸맞은 수재였으며, 여동생 노리코는 언니가 자신의 진로까지 결정해 언니와의 차이를 절감하며 살아간다. 이윽고 언니의 동급생과 만나면서 노리코는 점차 자신의 삶의 방식을 되돌아본다.
야차 부인
『쁘띠 코믹』(쇼가쿠칸) 1982년 4월호
산속 깊은 곳의 오래된 단독주택으로 가족과 함께 이사 온 ‘나’는 집 안에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감지한다. 낯선 생활을 하는 가운데 무서운 여자의 얼굴과 의문의 검은 물체가 나타나면서 고독과 불안에 시달리는 나날이 계속된다. 가족을 생각하며 고통을 견디는 사이 자신의 건강이 악화되고, 괴이한 현상도 심해진다. 일상 속에 도사리는 기괴한 귀신의 공포를 밀도 있게 그린 괴기 단편.
거울아, 거울아…
『부~케』(슈에이샤) 1986년 10월호
열네 살 유키의 어머니는 미모의 인기 여배우다. 일곱 명의 연인이 떠받드는 여왕 같은 어머니와 달리, 하얀 피부만 닮았을 뿐 통통한 체형의 유키는 중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한다. 어느 날, 어머니의 첫 연인이었다는 거물 신사와의 만남을 계기로 유키는 어머니의 진실을 알게 된다. 뒤틀린 모녀 관계와 심리적 갈등을 그린 이야기.
그린 푸즈
파트 1: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7년 9월호
파트 2: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7년 11월호
천사같은 아역 스타 토비와 오빠를 숭배하는 볼품없는 여동생 마샤. 가족은 토비를 중심으로 돌아갔지만, 변성기로 인해 연예계에서 누리던 영광을 잃는다. 그러나 마샤가 비범한 노래 실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알고, 토비와 마샤는 남매 듀오로 재기를 노려 성공을 거두지만, 남매 사이에 자리한 뒤틀린 애정과 질투는 이윽고 마샤의 몸을 갉아먹는다. 잔혹한 심리극.
Theme 6: 새 시대의 발레 만화
‘아라베스크’ 이후 ‘목신의 오후’(1989년)와 ‘검은 새―블랙 스완’(1994년) 등 발레사에 이름을 남긴 실존 인물을 소재로 한 단편 작품을 발표한 야마기시였지만, 2000년대에 들어서 다시 본격적인 장편 발레 만화 ‘텔레프시코라/무희’(1부: 2000-2006년, 2부: 2007-2010년)의 연재에 착수한다.
‘아라베스크’가 완결된 지 4반세기의 세월이 지나 일본의 발레 수준은 유럽,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야마기시는 이야기의 무대를 유럽에서 현대 일본으로 옮겨, 발레에 인생의 모든 것을 거는 소녀들을 다시 생생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유키를 프리마돈나가 아니라 코레오그래퍼(안무가)로 설정한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무용수의 신체성뿐만 아니라 창조하는 시점까지 파고든 이 작품은 21세기 발레 만화의 새로운 이정표가 되었다.
목신의 오후
『부ー케』(슈에이샤) 1989년 11월호-12월호
20세기 초, 시대의 최첨단을 달리던 발레 뤼스에서 활약한 천재 무용가 니진스키는 디아길레프 하의 파리 공연에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도약과 표현력으로 명성을 높이던 가운데,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를 직접 안무하고, 그 전위적인 무대는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의 극한을 추구한 고독한 무용가의 일생을 그린 실존 인물 기반의 이야기.
흑조―블랙 스완
『세리에 미스터리』(하쿠센샤) 1994년 4월호
러시아에서 망명한 천재 안무가 미스터 B 밑에서 발레리나로서의 명성과 부족함 없는 결혼생활을 손에 넣은 마리아. 그러나 고전 작품인 ‘백조의 호수’조차 1막의 백조 오데트 역밖에 춤출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시선 끝에는 젊고 재능 넘치는 발레리나의 모습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질투심은 마리아를 어떤 장소로 이끈다.
빌리
『다 빈치』(미디어 팩토리) 2007년 1월호-9월호
낭만주의 발레의 최고봉인 『지젤』의 프리마 발레리나로 결정된 히가시야마 레나. IT 기업 사장 다카토 가즈야를 후원자로 얻어 공연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그 무대가 되는 H홀에는 ‘어떤 소문’이 떠도는데……. 『지젤』에 등장하는 미혼의 정령 윌리를 연상시키는 애절한 사랑이 그려진다.
테르프시코라/무희
제1부: 『다 빈치』(미디어 팩토리) 2000년 11월호-2006년 11월호
제2부: 2007년 12월호-2010년 10월호
발레 교실을 운영하는 어머니 밑에서 장래가 촉망되는 언니 치카와는 달리 느긋하게 성장한 여동생 유키. 그러나 한 전학생과의 만남을 계기로 발레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알게 되는데……. ‘표현의 정점’을 지향하는 소녀들의 성장과 고뇌, 육체적 한계 등을 날카롭게 그려낸다. 제11회 데즈카 오사무 만화 대상 수상작.
언령
『BE・LOVE』(고단샤) 2013년 2월 15일호(4호)-3월 15일호(6호)
“난 위선자야”――프로 발레리나를 지향하는 사야카는 전년도 콩쿠르에서 실패한 이후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말에도 휘둘리게 된다. 정신적인 나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지만……. 말과 신체의 밀접한 관계를 주인공 사야카의 독백으로 표현한다.
Theme 7: 역사에 깃든 신비
‘해 뜨는 곳의 천자’ 이후 야마기시는 역사적 소재를 다루면서 그 안에 숨어 있는 신비성과 초월적인 힘에 대한 관심을 심화시켰다.
‘야마토타케루’(원작: 우메하라 다케시, 1986-87년)와 ‘청동기 시대’(1998-2000년)처럼 고대 일본을 무대로 한 작품에서는 역사적 사실조차 확실하지 않은 먼 시대 속에서 역사를 창조한 인물과 신적 존재의 관계성을 그린다. 한편 ‘투탕카멘’(1994-97년)에서는 고대 이집트 유적 발굴을 둘러싼 불가사의한 현상을 통해 장대한 역사 속에 잠재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시사한다. 야마기시는 역사를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결코 풀리지 않는 신비를 간직한 것으로 바라보는지도 모른다.
그 도달점이 최근 가장 긴 연재작인 ‘레벌레이션―계시―’(2015-20년)이다. 중세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 전설을 다룬 이 작품은 신앙과 교회제도의 사이에서 스러져간 한 소녀의 생애를 세밀하게 묘사했다.
야마토타케루 — 원작: 우메하라 다케시
『월간 Asuka』(가도카와서점) 1986년 12월호-1987년 7월호
일본 고대사에 남는 영웅 야마토타케루의 생애를 그린 작품. 쌍둥이 형 오우스노 미코를 실수로 죽인 탓에 가혹한 이민족 토벌을 명령받은 야마토타케루의 용맹하면서도 슬픈 싸움이 펼쳐진다. 야마기시 작품으로서는 약간 드물게 근육질의 탄탄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영웅이 주인공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하트셉수트
『세리에 미스터리』(하쿠센샤) 1995년 10월호/Ⅱ 1996년 4월호
고대 이집트의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에 관한 이야기. 곡하는 여인 메누우와 그녀의 여동생이자 신비한 지혈 능력을 지닌 세셴은 어느 귀인의 치료를 계기로 아직 왕위에 오르기 전인 하트셉수트를 만나 왕궁으로 초대받는다. 당시 파라오가 장난삼아 예언을 요구하자, 메누우는 하트셉수트가 왕좌에 오르는 모습을 환시하는데…….
투탕카멘
『LaLa』(하쿠센샤) 1994년 7월호-1995년 7월호
『월간 코믹 톰』(우시오 출판사) 1996년 5월호-1997년 4월호
“나는 너를 왕으로 만드는 자이다.”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가 꿈속에 나타난 황금 샌들을 신은 인물의 인도를 받으며 투탕카멘 왕묘의 발굴을 완수하기까지를 그린 실화 기반의 역사 드라마. 이 세상에 머무르는 영혼인 ‘카’를 자처하는 소년 등 독창적이고 신비로운 인물들을 배치해 드라마의 재미를 더한다.
이시스
『월간 코믹 톰』(우시오 출판사) 1997년 6월호-8월호
오시리스는 왕위에 오르면서 두 여동생 가운데 이시스를 아내로 맞이한다. 사랑스러운 네프티스와 달리 이시스는 백발에 붉은 눈을 지닌 알비노이며 몸도 약했다. 오시리스는 그런 이시스를 거들떠 보지 않지만, 이시스에게는 신비한 힘이 있었다. 고대 이집트 신화를 소재로 인간의 사랑과 욕망, 권력 투쟁, 복수와 운명을 그린 작품.
청동기 시대
『월간 코믹 톰 플러스』(우시오 출판사) 1998년 5월호-2000년 2월호
고대 왜국의 어느 남쪽 섬에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이요. 골칫거리 취급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지내던 두 사람 앞에 어느 날 야마타이의 이토국 남자가 바다를 건너 찾아온다……. 무녀왕 히미코가 다스리는 땅을 무대로 왕족의 후계자 다툼과 주변국과의 분쟁에 휘말린 소녀의 격동적인 운명을 그린 역사 이야기.
레벌레이션—계시
『모닝』(고단샤) 2015년 1월 15일 4, 5 합병호-2020년 11월 12일 48호
동레미 마을에 사는 평범한 양치기 소녀 잔은 어느 날 하늘로부터 받은 “프랑스로 가서 왕을 구하라”는 계시에 이끌려, 프랑스군을 이끌고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해 전쟁터로 향한다. 머지않아 닥칠 비극도 알지 못한 채…….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에서 굳건한 신앙심을 가슴에 품고 전투의 깃발을 들었던 ‘라 퓌셀’, 잔 다르크의 삶을 그린다.
Theme 8: 에세이 만화와 표지 작업
진지하고 긴장감 넘치는 작품 세계로 알려진 야마기시이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상을 소재로 한 에세이 만화를 일찍부터 발표해왔다는 점도 큰 특징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장난기와 유머가 넘치며, 또 다른 면모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서는 그중 일부로, 자택 건축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케사란 파사란’(2011-12년)과 어린 시절에 즐겼고 다시 다니기 시작한 발레 교실 경험을 소재로 한 연작중 ‘죽을 지경의 발표회’(2004년)를 소개한다.
또한 야마기시는 가도카와서점(현 KADOKAWA)이 10대를 대상으로 창간한 만화 잡지 『월간 Asuka』 창간호의 표지를 담당했으며, 그 이후에도 화려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여러 차례 이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다.
타임 슬립
『COMIC 아레!』(매거진 하우스) 1993년 11월 20일호
히에이산에서 택시를 타고 내려오던 중 같은 장소를 벗어나지 못한 채 빙빙 돌며 달리는 불가사의한 현상을 경험한 작가가 어느 날 이 이야기를 꺼내자 실은 자신도 같은 경험을 했다는 사람들이 잇달아 나타났다. 과연 여우나 너구리에게 홀린 것일까? 어떻게 그 미로에서 빠져나왔을까? 작가 본인이 체험한 시간과 거리에 얽힌 신비한 이야기.
죽을 지경의 발표회
『다 빈치』(미디어 팩토리) 2004년 9월호
마흔일곱 살에 발레 레슨을 다시 시작한 작가와 동료들의 사고 연발! 땀과 눈물의 발표회. 과연 모두 『돈키호테』를 무사히 끝까지 춤출 수 있을까!? 무대 뒤의 모습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에세이 만화.
케사란 파사란
『다 빈치』(미디어 팩토리) 2011년 3월호-2012년 10월호
무모한 일러스트레이터 겸 에세이스트 유라코가 갑자기 집을 짓겠다고 선언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현대의 주택 건축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와 어딘가 신비로운 요소를 경쾌하게 그린 코믹한 이색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