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말년:1969–1972
실제로 피카소의 최말년은 비범한 창조성과 생산성이 특징이었습니다. 1961년 이후 그는 무쟁의 마스 노트르담 드 비에 살았으며, 1969년부터 1971년까지 데생 194점, 1971년부터 1972년까지 판화 156점, 1969년부터 1973년 사망에 이르기까지 유화 350점 이상을 완성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방대한 수의 작품들은 아비뇽에서 1970년과 1973년에 열린 전시회때 선보였습니다.
이 무렵의 피카소는 분명 인물상을 즐겨 다루었으며, 남성과 여성의 단독 초상, 군상, 때로는 《가족》(no. 77)같은 가족을 그린 그림 등 다양한 형식으로 탐구했습니다. 색채도 둑이 터진 듯 넘쳐흘렀습니다. 나아가, 이전보다 붓놀림이 더 자유로워졌으며, 그리는 행위가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이러한 말년의 작품들을 두고 기괴하다거나 노망이 들었다고 야유한 평론가도 있던 반면, 당시 대부분의 비평가들은 90세를 넘긴 나이에도 피카소의 회화적 기량과 창조성은 쇠퇴하지 않았다고 찬사를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