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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초상 예술의 융성

르네상스의 인문주의자들은 신체적, 내면적으로 고유한 특성을 지닌 ‘개인’이라는 개념을 형성했습니다. 15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전기, 회고록, 여행기와 같은 저작이 현저하게 증가한 현상은 이 시대의 개인에 대한 시선의 변화를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크게 꽃핀 것이 바로 초상 예술이었습니다. 외모의 특징에서부터 내면의 성격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개성을 회화와 조각으로 영원히 남기는 초상은, 처음에는 왕후 귀족과 고위 성직자 등 지배계층을 위한 예술 장르였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지식인과 부유한 시민 등 중산계층 사람들에게도 확산되었습니다. 남성 단독이나 남성과 아내, 자녀들을 함께 그린 초상화는 모델의 사회적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그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의복과 소지품, 주변 환경 등의 묘사를 통해 직업과 사회적 지위를 암시했습니다. 한편 여성의 초상은 종종 약혼자에게 보내거나 결혼을 기념하기 위해 그렸습니다. 또한 초기에는 가족의 일원으로서만 묘사했던 아이들도 시대가 흐르면서 단독 초상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초상화 형식에 커다란 혁신이 일어난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었습니다. 북방, 특히 플랑드르의 화가들은 ‘4분의 3 정면관’이라 불리는 초상 형식, 즉 인물을 화면에 대해 비스듬히 배치하는 초상 형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초기에는 배경을 짙은 회색이나 검은색의 단색조로 처리했으나, 점차 풍경을 묘사하고 공간의 깊이를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형식은 15세기 후반부터 이탈리아에 보급되어, 그때까지 일반적이었던 측면 초상 형식을 대신해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에 걸쳐 예술가들은 인물의 표정과 동작을 묘사함으로써 그 내면에 숨겨진 심리와 감정을 표현하는 데 점점 중점을 두게 되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티치아노 등 초상 예술이 뛰어난 예술가들은 모델의 자세와 시선의 방향 등을 연구하며 그 닮은 모습에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