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션 2 데뷔 무렵 ~1970년대 소녀만화~
1970년대에 소녀만화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새로운 잡지가 잇따라 창간되면서, 지면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넘쳐났습니다. 소녀를 대상으로 한 은은한 사랑이나 가족 간의 정과 같은 기존의 틀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 역사, 이문화와 전쟁, SF와 판타지, 그리고 인간 내면의 깊숙한 곳까지――소녀만화는 서사의 영역을 넓혔으며 급속하게 표현을 확장시켰습니다. 이러한 확장을 뒷받침한 것은 전후에 태어난 세대의 여성들이었습니다. 1966년에는 야마토 와키가, 1969년에는 하기오 모토와 야마기시 료코가 데뷔합니다. 훗날 소녀만화의 혁신을 이끌게 되는 그녀들도 처음부터 특별한 존재였던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작가들이 교차하는 시대 속에서 자신만의 표현을 모색했습니다.
이 섹션에서는 세 사람의 데뷔 시기 작품을 전시함과 동시에, 당시의 소녀만화 잡지를 한눈에 살펴봅니다.
하기오 모토 작품 줄거리
쿨 캣
『나카요시』(고단샤) 1970년 2월호
넬리 브라이스의 집에 고양이 두 마리가 찾아온다. 남매인 데니스와 비버는 기뻐하지만, 어머니는 고양이라면 질색한다. 쫓아내려 해도 재빠른 탓에 붙잡을 수 없어 온 가족이 대소동에 휘말린다. 신비로운 고양이들에게 휘둘리는 가족을 그린 소동극 코미디.
비앙카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70년 7월 7일호 증간
노년의 화가 클라라 하이머는 열두 살 때 사촌 비앙카를 만났다. 매일 모자도 쓰지 않은 채 숲으로 뛰어가는 비앙카와 내성적인 클라라는 좀처럼 마음을 나누지 못한다. 어느 날 클라라는 숲으로 향하는 비앙카의 뒤를 쫓는다. 그곳에서 목격한 것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십 대 소녀의 세계를 서정적으로 그린 하기오 모토의 초기 대표작.
사요가 바느질하는 유카타
『주간 소녀 코믹』(쇼가쿠칸) 1971년 8월 18일호 여름 증간
열네 살 사요는 여름방학 숙제로 유카타를 만들게 된다. 그 때까지 사요의 유카타는 매년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다. 어머니가 생전에 자신을 위해 골라준 옷감으로 유카타를 지으면서, 사요는 유카타에 얽힌 어머니와의 추억을 엮는다.
여성 소녀만화가의 부상
1947~49년생인 하기오, 야마기시, 야마토의 어린 시절에는 전후 스토리 만화를 이끌었던 데즈카 오사무*1(1928-89)를 비롯해 후지코 후지오(후지코 F 후지오: 1933-96, 후지코 후지오Ⓐ:1934-2022), 요코야마 미쓰테루(1934-2004), 아카쓰카 후지오(1935-2008), 이시노모리 쇼타로(1938-98), 마쓰모토 레이지(1938-2023), 지바 데쓰야(1939-) 등 훗날 소년만화계의 스타가 될 인물들이 소녀만화 잡지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한편 여성 작가들 중에서는 전쟁 전에 태어난 세대인 와타나베 마사코(1929-), 마키 미야코(1935-), 미즈노 히데코(1939-) 등이 선두에 서서 초창기 소녀만화를 뒷받침했다.
마침 일본은 고도경제성장기를 맞이했고 만화의 기세는 멈출 줄 몰랐으며, 1963년에는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와 『마가렛』*2(슈에이샤)이 창간되었고, 이어서1968년에는 『소녀 코믹』*3(쇼가쿠칸)이 창간되는 등 소녀만화 잡지의 간행 횟수도 늘어서 1970년대 소녀만화 전성기의 토대를 차근차근 마련했다. 남성 작가가 대다수를 차지했던 소녀만화 잡지에서도 1960년대 후반에는 여성 작가의 수가 역전하게 된다.
*1| 데즈카의 소녀만화 대표작인 『리본의 기사』는 1953년부터 1956년까지 『소녀 클럽』(고단샤)에 게재되었다.
*2| 『소녀 북』의 후속 잡지였으며, 이후 주간지로 전환되었다. 현재는 월 2회 간행된다.
*3| 창간시에는 월간지였지만, 1969년에 월 2회 간행되었으며, 1970년에 주간지로 전환되었다. 이후 1978년에 다시 월 2회 간행으로 되돌아갔다. 현재의 명칭은 『Sho-Comi』이다.
야마기시 료코 작품 줄거리
레프트 앤드 라이트
『리본 코믹』(슈에이샤) 1969년 5월호
야마기시의 데뷔작. 히다리가 다니는 중학교에 오른팔이 불편한 소녀 우콘이 전학 온다. 탁구부 소속인 히다리는 우콘이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탁구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가 다시 일어서도록 복식조를 결성하자고 제안한다. 두 사람은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 맹훈련을 거듭하며 유대감을 돈독히 다진다.
미스 안경은 한창 때
『리본 코믹』(슈에이샤) 1970년 2월호
곤도 사키코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가 거두어 기른다. 그 집에는 대학생 신이치가 있었고, 사키코는 그에게 은근한 연정을 품는다. 전학 간 학교에서 ‘미스 안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 사키코는 반장인 데다 인기도 많은 가가와 루미의 옆자리에 앉게 된다. 한편 신이치는 루미의 가정교사를 맡고 있으며, 루미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 사실을 사키코가 알게 되고……. 작가의 초창기 러브 로맨스.
라그리마
『리본 코믹』(슈에이샤) 1970년 9월호
1821년 독일. 사육제로 북적이는 마을에서 다섯 살 마리아는 팔려 갔다. 가축처럼 취급받는 사이에 어느새 고향과 가족마저 잊어버린다. 여러 곳에서 일한 그녀를 달래 준 것은 잊고 지냈던 고향으로 이어지는 라그리마라는 음악이었다. 불우한 소녀의 일생을 그린 단편.
신인 만화가의 등용문
많은 만화가 지망생 소녀들에게 1964년 사토나카 마치코(1948-)가 불과 16세의 나이로 만화상*1을 수상하고 프로로 데뷔한 일은 큰 화제였던 듯하다. 이후 소년, 소녀만화 잡지는 모두 신인상을 설립했고, 전후에 태어난 젊은이들이 프로 작가를 지향하기 위한 등용문이 되었다. 하기오, 야마기시, 야마토가 만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한 1960년대 후반에는 현재도 활약하는 많은 유명 작가들이 잇달아 데뷔해서 그야말로 군웅할거라고 부를 만한 상황이었던 셈인데, 이 신인 발굴 시스템을 통해 전국에서 만화가를 지망하는 소녀들이 모여들었다는 점은 역사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1970년대에는 소녀만화의 창작자가 남성 작가에서 여성 작가로 완전히 이행했다고는 해도 출판사 직원이나 편집자는 여전히 남성이 대다수를 차지했으며. 그중 젊은 여성 신인 작가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그릴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인기 만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한 제약이 있었던 소년만화에 비하면, 소녀만화는 연애적 요소나 ‘보이 미츠 걸’과 같은 틀만 충족하면 어느 정도 자유로운 부분도 많았다고 한다. 하기오, 야마기시, 야마토는 초기 작품부터 무대 설정과 세부 묘사에 작가성을 담아내면서 자신만의 표현을 추구하고, 새로운 세계관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1| 정확한 명칭은 ‘고단샤 소년소녀 만화작품 현상모집’이었으며, 그 때까지 주류였던 각 잡지의 월례상 등과는 달리 소년 잡지와 소녀 잡지가 공동으로 신인을 공모하는 획기적인 시도였다. 사토나카는 ‘피아의 초상’으로 응모해 1위로 입선했다.
야마토 와키 작품 줄거리
도둑 천사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66년 9월 13일호(37호)
소년원에서 갓 나온 잭 엔젤은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할 수밖에 없다. 몰래 들어간 아파트에서 잭은 다리가 불편한 소녀 미셸을 만난다. 미셸은 날렵하게 움직이는 잭을 ‘천사’로 착각하는데……. 제5회 고단샤 신인 만화상 가작 수상작이다. 이후 잭 엔젤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들이 시리즈로 이어졌다.
신나는 쌍둥이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68년 6월 25일호(26호)-8월 6일호(32호)
밀리와 에이미는 플로리다에서 아빠와 함께 사는 사이좋은 쌍둥이이다. 다정한 아빠와 친구인 돌고래 댄디와 함께 즐거운 나날을 보내던 두 사람. 하지만 뉴욕에서 온 미망인 해들리 부인과 아빠가 친해지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주변에서는 연이어 소동이 벌어진다. 작가의 기념할 만한 첫 연재작인 자매물 코미디이다.
헌트 헌트 헌트
『주간 소녀 프렌드』(고단샤) 1969년 11월 25일호(48호)-1970년 3월 10일호(11호)
같은 시기에 뉴욕의 전원 기숙사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유명한 점술가의 딸 킴과 컴퓨터를 좋아하는 백작집 규수 다이앤. 서로 반발하면서도 어딘가 서로 닮은 두 사람이 이상형의 남자친구를 찾아 쟁탈전을 벌이며 불꽃 튀는 대결을 펼치는 모습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자신의 힘으로 멋진 남자를 쟁취하려는 행동력 넘치는 두 여주인공이 눈부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