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트롱프 레스프리(정신의 착각)
사물을 다른 것으로 변모시키는 예술적 과정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황소 머리》는 파운드 오브젝트(주워온 일상용품)를 변형한 사례이며, 피카소 작품중 가장 유명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 작품의 원천이 된 자전거 안장과 손잡이는, 피카소가 1942년에 세상을 떠난 친구인 조각가 훌리오 곤살레스의 장레식에 참석하는 가는 길에 어느 쓰레기 장에서 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황소 머리》는 두 물체를 작가가 전혀 손대지 않고 단순히 결합시켜 완성한 아상블라주입니다. 그 때문에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 특히 첫 사례인 1913년의 《자전거 바퀴》와 연관지어 논의되었습니다. 아상블라주라는 마치 마법과도 같은 행위를 통해 본래의 물체인 자전거 부품은 새롭게 창조된 황소가 지닌 환기력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의미상의 혼란, 즉 ‘트롱프 레스프리(정신의 착각)’가 생기는 것입니다.